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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새로운 트렌드
최근 와인의 새로운 트렌드로 레드, 화이트, 로제 와인도 아닌 오렌지 와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렌지 와인은 몇 년 전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서는 내추럴 와인 인기와 함께 젊은 층과 마니아층 사이에서 소비가 늘어왔습니다. 오렌지 와인의 인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비자가 와인을 선택하는 폭과 시야가 점점 다양하고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오렌지 와인의 주요 생산지가 조지아를 비롯한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란 점인데, 이는 지금껏 와인의 대표적인 생산국을 분류할 때, 구대륙(프랑스, 이탈리아)과 신대륙(칠레, 호주)으로 구분 짓던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렌지 와인에는 단 한 개의 오렌지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럼, 오렌지 없는 오렌지 와인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지금부터 오렌지 와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오렌지 와인이란 무엇인가?
오렌지 와인이란 청포도 품종을 발효하고 숙성시킬 때 포도 껍질, 줄기, 씨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농도의 오렌지 빛깔을 띠게 된 와인을 말합니다. 즉, 오렌지 와인은 엄밀히 말해 화이트 와인의 한 종류로 볼 수 있으며, 포도로 만든 오렌지 빛깔을 띠는 ‘오렌지색 와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또는 ‘오렌지 껍질 향이 나는 와인이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와인은 그 원료가 되는 포도 품종에 따라 레드 와인 또는 화이트 와인으로 불리는데, 오렌지 와인은 포도 품종이 아닌 제조 방법에 따라서 명칭이 정의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렌지 와인에 단 한 개의 오렌지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걸까? 와인 업계에 따르면 2004년 영국 와인 수입업자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와인 거래 시 와인을 분류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있습니다. 즉 그가 기존에 와인을 분류할 때 레드, 화이트, 로제 등의 색깔로 구분해 온 것처럼 이 와인의 이름을 ‘오렌지색 와인’으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 통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와인의 색깔을 ‘오렌지’로 채택한 데에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오렌지라는 단어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모두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오렌지 와인을 기술적으로 정의할 때는 호박색을 띠어 ‘앰버 와인(Amber Wine)’이라 칭하며, 포도 껍질을 함께 넣어 발효시키기 때문에 ‘껍질째 발효된(skin fermented) 화이트 와인’, ‘껍질이 침용된(skin macerated) 화이트 와인’, ‘껍질을 넣은(skin contact) 와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2. 오렌지 와인의 기원, 발상지
오렌지 와인은 약 8,000년 전 조지아(Georgia)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한 번 다루었듯이 와인의 발상지이자 와인의 요람인 조지아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오렌지 와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조지아에서는 고대부터 흙으로 만든 암포라(Amphora)인 크베브리(Qvevri)라는 항아리를 입구만 빼고 땅에 묻은 후, 이 안에 청포도를 으깬 즙과 껍질을 넣고 발효해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조지아의 이러한 전통적인 양조법은 소련의 식민 지배 시절 한동안 그 명맥이 끊긴 적도 있었으나, 오늘날 여전히 조지아에서 행해지고 있는 전통 와인 양조법입니다. 물론 현대의 오렌지 와인의 발효가 크베브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와인 생산자는 목재 오픈 탑 발효기, 콘크리트 발효기, 중고 오크 배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등 여러 발효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조지아 외의 다른 나라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탈리아 북동부의 프리울리와 슬로베니아 서부의 고르슈카 브르다 지역에서도 조지아와 비슷한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1844년 슬로베니아의 성직자였던 마티야 베르토베츠는 그의 저서인 ‘슬로베니아의 와인 양조’에서 “포도 껍질째(적포도든 청포도든) 4~7일간 침용 해 발효하라.”는 포도 발효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3. 오렌지 와인의 양조 방법
오렌지 와인의 양조 방법 다른 일반적인 와인의 양조 과정과는 조금 다릅니다. 쉽게 말해서 오렌지 와인은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청포도 품종을 사용하여 레드 와인을 양조 방법으로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에는 포도 껍질, 씨(때로는 줄기까지)는 이용하지 않고 청포도의 즙만 압착해 발효하지만, 오렌지 와인은 마치 레드 와인을 만들 때처럼 포도 껍질, 씨까지 함께 넣고 접촉시켜 발효하는 과정인 침용 기간을 거칩니다. 침용은 포도 껍질과 포도즙을 접촉시켜 타닌과 색상을 빼내는 와인 양조 과정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포도 껍질과 포도즙을 접촉시키는 것을 전문용어로 스킨 콘택트(skin contact)라고 합니다. 오렌지 와인은 이 스킨 콘택트 방식의 침용 기간을 거치고, 발효 기간도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1~2년까지 접촉시켜 발효합니다.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는 침용 기간을 거치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오렌지 와인은 이러한 침용 겸 발효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이트 와인이 투명한 빛깔을 띠는 것과 달리 오렌지 와인은 더 진한 색이 나오고 오렌지 빛깔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오렌지 와인의 양조 방법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내추럴 와인을 만들 때처럼 자연 효모만을 사용하고, 이산화황 등의 첨가물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발효를 마친 오렌지 와인은 포도 껍질과 와인을 분리해서 숙성한 뒤 병에 담는데, 포도 껍질이나 씨를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병에 넣는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오렌지 와인을 양조할 때는 포도 껍질과 포도 씨를 사용하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포도 껍질을 사용하면 포도 껍질에 존재하는 자연 효모로 발효할 수 있고, 포도 씨에는 항산화 기능을 하는 타닌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렌지 와인을 마셔보면 화이트 와인의 산미와 함께 레드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타닌과 무게감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4. 오렌지 와인을 즐기는 방법
오렌지 와인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오렌지 와인의 빛깔은 대부분 오렌지색이지만, 연한 분홍색부터 진한 분홍색, 대추색까지 다양하므로 눈으로 다양한 빛깔을 감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와인 잔은 일반적인 레드 와인 잔을 사용하면 됩니다. 적당한 음용 온도는 보통 13~15°C 사이가 좋은데, 가벼운 스타일의 오렌지 와인은 10~12°C, 묵직한 스타일의 오렌지 와인은 14~16°C로 맞춰서 마시면 더욱더 맛있다고 합니다. 오렌지 와인은 공기와 접촉하면서 그 향미와 풍미가 더 풍부해집니다. 오렌지 와인을 마셔보면 떫은맛이나 산미가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때엔 디캔터를 사용하여 와인을 디캔팅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오렌지 와인은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특히 치즈, 해산물, 타파스, 그리고 중동 음식과의 조화가 뛰어나다고 하니, 다양한 음식과의 페어링을 통해 더욱 풍부한 맛을 음미해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결론
지금까지 오렌지 없는 오렌지 와인의 정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날 와인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오렌지 와인. 새로운 문화는 기존의 선입견을 깨고 낯선 것들에 호기심을 갖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오렌지 와인은 이제껏 흔히 접해 보지 못한 낯선 와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새로운 맛과 희소성을 독특한 매력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멋진 와인의 세계를 탐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와인의 새로운 매력에 빠질 준비가 되었다면 오렌지 와인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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