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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담는 최적의 용기
와인을 담는 최적의 용기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바로 유리병입니다. 유리병의 사용은 17세기에 와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는데, 와인을 담은 용기 중에서 유리가 와인의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최적의 용기라는 사실이 보편화되면서 대중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코르크 마개라는 최적의 마개가 등장하면서 유리병의 사용은 더욱 확산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와인 한 병의 일반적인 크기는 750mL로 이는 국제 표준 용량입니다. 그런데 와인병의 표준 용량은 왜 750mL가 된 걸까? 사실 와인 한 병의 용량이 750mL로 정해지게 된 명확한 근거는 찾기 어렵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추측과 가설이 존재합니다. 그럼, 와인병의 크기에 담긴 비밀을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와인 한 병이 750ml인 이유
1. 유리병 크기와 폐활량의 관련성
먼저 첫 번째 가설은 유리병 크기는 폐활량과 관련이 있다는 추측입니다. 과거 17세기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일일이 유리병을 입으로 불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유리병의 모양은 일률적이지 않았지만, 그 용량은 대략 750mL가 됐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숙련된 기술자가 한 번 크게 들이쉰 숨으로 만들 수 있는 병 크기가 바로 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즉, 유리병 장인의 평균 폐활량으로 만들 수 있는 최대 크기가 750ml였고, 이후에 사람이 아닌 기계로 유리병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이 발달했지만, 이러한 과거의 영향으로 750ml를 유지했고, 그것이 지금 와인병의 표준 크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2. 영국 갤런과 프랑스 리터
두 번째 가설은 영국 갤런(Gallon)과 프랑스 리터(L)에서 유래했다는 추측입니다. 영국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최대 수입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용량의 단위로 리터를 사용하고 영국은 갤런을 사용했기 때문에 관세 부과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당시 운송에 사용되던 오크 배럴(참나무통) 한 개의 용량(225L)을 750mL씩 300병으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용량 단위인 1갤런(4.5L)을 프랑스의 용량 단위로 환산하면 750ml 와인병 6개가 산출됩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여러 국가가 750ml를 와인 한 병의 표준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와인 한 상자가 통상적으로 와인 6병(4.5L=1갤런) 또는 12병(9L=2갤런) 단위로 유통된다는 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미국 갤런
세 번째는 가설은 영국 갤런이 아니라 미국 갤런이 기준이 되었다는 추측입니다. 즉 미국 갤런의 5분의 1인 750mL가 와인 한 병의 기준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갤런이라도 영국 갤런과 미국 갤런은 그 양이 다릅니다. 1707년 영국 1갤런은 3,785.329mL였고, 이 기준이 미국으로 전해져 미국 1갤런은 지금까지 약 3,785mL입니다. 그러다가 1826년 영국이 임페리얼 단위계(야드파운드법)를 도입하면서 영국 1갤런을 4546.9mL로 변경했습니다. 1979년까지 미국에서는 술 한 병의 단위로 ‘피프스(fifth = 1/5)’를 사용했는데, 그 용량이 757ml 정도였고 이 피프스를 미터법으로 편입하면서 나온 것이 와인 한 병의 크기인 750mL라는 것입니다.
4. 소비의 편의성
네 번째 가설은 소비의 편의성 측면에 대한 추측입니다. 소비의 편의성 측면에서 750mL는 두 가지 중요한 이점을 제공한다는 주장입니다. 하나는 750mL는 와인을 마실 때 한 번에 소비하기에 적합한 용량이라는 점입니다. 즉 한 병을 개봉한 후 한 번에 다 비울 수 있다면, 와인이 남아서 변질될 우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격을 합리적으로 유지하면서도 고품질의 와인을 제공하는 데 이상적인 크기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최근의 와인 소비 트렌드와는 다소 맞지 않는 주장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여럿이 모이는 사교 모임이 활발할 때는 일리가 있는 주장일 수 있겠지만, 1~2인 가구나 혼술족에게는 와인 한 병을 한 번에 다 소비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용량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와인 업계는 변화하는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하여 기존의 와인 대비 용량도 반, 가격도 반으로 줄인 제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구매를 촉진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5. 와인 잔의 크기와 관련
다섯 번째 가설은 와인 잔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는 추측입니다. 평소 와인을 마실 때 와인을 와인 잔에 가득 채워서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4분의 1이나 3분의 1을 넘지 않게 따르는 것이 기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와인 잔의 크기는 보통 250mL 내외로 이때 와인을 와인 잔의 4분의 1이나 3분의 1 정도가 되게 따르면 그 양이 약 125mL~150mL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레스토랑에서 125m로 6잔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750mL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없으며, 제 생각에는 차라리 와인 모임을 할 때 참여 인원에 따라 와인 수량을 정하는 참고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좀 더 타당해 보입니다.
와인 병 크기의 종류
와인 병은 750mL의 표준 용량 외에도 다양한 크기가 존재합니다. 그 종류를 살펴보면 가장 작은 크기부터 순서대로 187.5mL 스플릿(Split) 또는 피콜로(Piccolo), 200mL 쿼터(Quarter), 375mL 하프(Half), 1.5L 매그넘(Magnum), 3L 더블 매그넘(Double Magnum), 4.5L 제로보암(Jeroboam), 6L 임페리얼(Imperial), 9L 살마나자르(Salmanazar), 12L 발타자르(Balthazar), 15L 네브카드네자르(Nebuchadnezzar), 18L 멜키오르(Melchior) 가 있습니다. 피콜로나 쿼터는 주로 샴페인과 같은 스파클링 와인에 자주 사용합니다.
결론
지금까지 와인 한 병이 750mL인 이유와 관련된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을 살펴보았습니다. “와인 한 병은 왜 750mL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무도 모른다.”가 가장 정확한 답일 것 같습니다. 와인을 담는 최적의 용기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로 밝혀졌지만, 그 크기가 정해지게 된 정확한 배경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와인병의 크기는 한 가지의 이유가 아닌, 인간과 과학, 기술, 수학, 경제 등 인간의 모든 분야가 결합하여 탄생한 결정체라는 점은 분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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