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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상식

국내 최장수 와인의 숨겨진 비밀: 마주앙 뜻, 탄생 비화, 마주앙 미사주

by 펜-케이크 2023. 11. 10.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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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국내 최장수 와인이자 교황청이 공식 승인한 미사주가 바로 '마주앙(MAJUANG)'이란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마주앙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입니다. 그 역사가 무려 46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톨릭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한국의 유일한 미사주로 사용되는 와인이기도 합니다. 해외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이 마주앙을 '신비의 와인이다', '동양의 신비다'라고 불렀고, 독일 와인 학술 세미나에서도 주목하는 와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마주앙이 낯선걸까요? 이 정도의 인기와 명성이었다면, 오늘날 K-와인이나 국민 와인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마주앙에 대해 생각보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이 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무언가 베일에 싸여 있는 듯 호기심만 더해가는 마주앙.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동안 잘 몰랐던 마주앙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마주앙 뜻: 마주앙은 한국말이다?

    먼저 마주앙(MAJUANG)이란 이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얼핏 들으면 당연히 프랑스어나 다른 외국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되는데, 놀랍게도 마주앙은 토종 와인답게 100% 순우리말입니다. 마주앙의 출시를 앞두고 네이밍을 맡았던 이인구 카피라이터가 '마주 앉아 즐긴다'라는 뜻의 '마주안'을 제안했고, 여기에 프랑스 느낌이 나도록 끝을 '앙'으로 바꾸면서 한국어 '마주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당시의 마주앙은 독일 스타일의 와인이었으니 독일 느낌이 들어가는 게 맞지 않는가도 싶지만, 아무래도 '와인'하면 프랑스가 떠오르니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마주앙이 한글일 수밖에 없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국세청에서 술 이름에 외래어를 표기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에 한글밖에는 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주앙은 이름 하나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많은 와인입니다.   

     

     

     

    2. 현존하는 국내 최장수 와인

    2-1. 마주앙 탄생 배경

    마주앙의 탄생은 1964년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방문에서 시작됩니다. 대통령은 독일의 척박한 땅에서도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는 것을 보고, 수행단에 '한국형 와인을 만들 것'을 주문합니다. 이런 지시를 받아 동양맥주가(현 오비맥주)가 1973년 와인개발에 착수했고, 독일의 리슬링을 대표하는 산지인 모젤과 라인가우의 기후와 토양이 비슷한 경상도 일대에 포도밭을 조성하고, 독일에서 수입한 리슬링 묘목을 심게 됩니다.

     

    이렇게 '쌀 대신 포도'로 국민주 만들기 개발 정책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크게 2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다른 나라의 주요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격식을 갖춰 내어놓을 만찬주가 마땅치 않았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국민들이 밥을 먹고 살기도 힘든 시기임에도 술을 빚기 위해 많은 양의 곡물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전통주인 막걸리나 소주는 주로 쌀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이 어려운 시기에 쌀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종의 '한국형 와인으로 한국의 식량난도 해결해 보자'라는 의도도 깔려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2. 국산 2호 와인의 역전승

    와인의 불모지에서 드디어 국산 와인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산 1호 와인은 마주앙이 아니었습니다. 1974년 대한민국 최초로 해태주조에서 국산 1호 와인인 '노블와인'을 출시합니다. 그리고 1977년 5월 동양맥주(현 오비맥주)가 국산 2호 와인인 '마주앙'을 출시하게 됩니다. 이때 출시된 것이 마주앙 스페셜 화이트와 레드입니다.

     

    마주앙의 출시 다음 해인 1978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때 마주앙이 대통령의 선물로 미국에 건너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워싱턴 포스트는 마주앙을 '신비의 와인'으로 소개했고, 1985년에는 독일의 와인 학술 세미나에서도 마주앙을 주목했습니다. 동양의 와인 불모지에서 이 정도 수준의 와인을 만들었다는 것에서 해외의 관심이 쏠렸던 것입니다.

     

    비록 마주앙은 노블와인에 최초라는 타이틀은 빼앗겼지만, 출시 4개월 만에 35만 병을 팔았고 매출액에서는 무려 3배나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 인기를 얻습니다. 또한 현재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국산 와인이자 현존하는 최장수 와인 브랜드는 마주앙뿐입니다. 국산 2호 와인의 짜릿한 역전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주앙은 동양맥주에서 시작해서, 두산백화를 거쳐 지금은 롯데칠성음료가 생산하고 있습니다.

     

     

    마주앙 레드와 화이트
    마주앙 레드와 화이트

     

     

    2-3. 마주앙의 외면: 결국 '마주 앉지' 못했네

    탄탄대로를 달릴 것만 같던 마주앙의 인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와인의 수입이 개방된 것입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웠던 외국 와인들이 값싸게 들어오기 시작하자, 마주앙은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됩니다. 이름처럼 마주 앉길 바랐던 뜻과는 달리 등을 돌려버린 것입니다.

     

    주류회사의 입장에서도 수입을 해서 파는 것이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더 이익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와인들도 결국 자취를 감춥니다. 국내 여건상 와인 양조용 포도 농사가 쉽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국산 와인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졌으며, 소품종만으로는 다양한 라인의 상품을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4. 현재의 마주앙

    국산 와인의 무시와 굴욕 속에서도 이 마주앙만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마주앙을 출시하던 초기에는 국산 포도로 만든 와인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마트나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마주앙은 한국산 포도가 아닌 수입 와인을 사용합니다. 비유하자면 부모는 한국 사람인데,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마주앙을 더 이상 '토종 와인' 이나 '한국형 와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진 셈입니다.

     

    하지만 미사주만큼은 여전히 한국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주앙은 미사주 2종과 몇 가지 종류를 제외하면 외국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을 OEM(주문자 생산 방식)으로 수입해 국내에서 병입, 판매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리슬링으로 만든 마주앙 모젤이 마주앙의 최초 OEM 와인입니다.

     

     

    ☞ 마주앙 와인 종류 확인하기

     

     

     

    3. 한국 가톨릭 공식 미사주

    3-1. 교황청의 승인을 받다

    마주앙이 출시된 1977년, 같은 해에 마주앙은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이 승인한 공식 미사주가 되었고, 승인받은 이후로 4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주앙이 미사주가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가톨릭교회는 미사주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운송 도중에 변질되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생산된 와인을 한국에 미사에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담아 교황청에 마주앙 견본을 보내게 되었고, 이를 교황청이 승인하면서 마주앙은 현재까지도 '마주앙 미사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마주앙 미사주는 동양맥주에 이어 2009년부터 롯데주류가 계속 생산하고 있으며, 그 생산량은 연간 15만 병 규모입니다.

     

     

    마주앙 미사주
    마주앙 미사주(출처: 롯데주류 홈페이지)

     

     

    3-2. 미사주의 조건

    여기서 잠깐, 미사주가 뭔지 조건을 알아보겠습니다. 미사주로 사용되는 마주앙은 우리가 마트나 시중에서는 구입할 수 없습니다. 미사주의 조건은 우선 '전용 농장을 두어 국내산 포도만을 사용'해야 하며, '포도 이외에 다른 첨가물이 없이 자연 발효된 포도주'로 천주교 예식인 축복식을 거쳐야 합니다.

     

    '미사'는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가 나눈 최후의 만찬을 기리는 전례인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체성사로 이때 포도주가 쓰입니다. 가톨릭에서 와인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마주앙 미사주가 쓰였습니다. 마주앙 미사주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품질관리를 하다가 2005년부터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전례 위원회에서 교회 규정에 맞도록 생산하기 위해 공동으로 품질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4. 마주앙 장수 비결: 끝까지 살아남은 이유

    마주앙은 그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가 무려 46년입니다. 마주앙이 이렇게 오랫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소비자의 외면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물론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는 있습니다. 바로 롯데주류가 미사주 마주앙을 한국 전주교회 측에 독점 납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고정 거래처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 땅에서 가톨릭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마주앙이 사라질 확률은 희박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마주앙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의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주앙이 세계의 와인들과 맛으로만 경쟁했다면 벌써 사라진 지 오래였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마주앙은 한국의 와인 역사의 시작이었고, 그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의 식량난을 해결하려던 계기로 시작해 와인의 불모지였던 한국 땅에 포도를 심고, 국내 기술로 국산 와인을 양조해 내고,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의 미사주 승인을 받았다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의 진심, 열정,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마주앙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이유는 단지 이익을 남기려는 목적보다는 토종 와인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려는 노력은 아니었을까요?

     

     

    5. 마무리

    지금까지 국내 최장수 와인이자 교황청이 공식 승인한 한국 미사주인 마주앙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주말에 마트나 와인매장에 들르면 마주앙을 좀 더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여러분도 '마주앙과 마주 앉아 즐기는' 주말 보내보시면 어떨까요? 끝으로 언젠가는 마주앙이  가장 한국적인 와인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K-와인으로 재탄생하는 그날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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