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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와인과 인간의 삶
와인은 오랜 세월 동안 단순한 음료를 넘어 인간의 삶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삶의 일부로서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도 와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드러나는 수많은 찬사가 존재하며, 시인과 작가는 와인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고 화가에겐 작품의 중요한 단골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선 종교적인 상징으로 여겼으며 의학에선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등 와인의 그 역할과 범위는 단순한 음료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와인의 역할과 범위
1. 와인을 향한 찬사와 명언
와인의 매력에 빠진 많은 이들이 수많은 찬사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신(神)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라는 말로 와인을 위대한 창조물에 빗대었고, 독일의 종교 개혁가이자 개신교의 시작이 된 마르틴 루터는 “맥주는 인간이 만들었고 와인은 신이 만들었다.” 라는 말로 신앙의 깊이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의 존경받는 과학자이자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스퇴르는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많은 철학이 들어있다.”와 “와인은 최고의 건강 음료이며 가장 위생적인 음료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는 실제로 와인을 연구하고 발효와 부패의 원리를 이용해 생물체의 질병 원인을 찾는 데도 적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찬사들은 그저 감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위대한 연구의 업적도 뒷받침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합니다. 와인은 정치가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 1대 황제이자 와인 애호가였던 나폴레옹은 50번이 넘는 전쟁에 참여하면서 ‘즈브레 샹베르땅(Gevrey-Chambertin)’ 와인을 항상 곁에 두었고, “샹베르땅 와인 한잔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미래를 장밋빛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말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는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믿을 때는 조심하라.”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와인을 신뢰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2. 영감과 감동의 원천
와인은 수많은 예술가의 영감과 감동의 원천이었습니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를레르의 ‘포도주의 혼’은 대표적인 와인 예찬 시입니다. 그는 이 시에서 포도의 탄생과 와인의 제조 과정, 와인을 즐기는 이들을 낭만적으로 노래합니다.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와인은 병에 담긴 시(Wine is bottled poetry)”라고 말한 것과 같이 와인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듯한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영국 낭만주의 대표하는 시인 바이런은 종교학 시험에서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종교적, 영적 의미에서 서술하라’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그 답안으로 “물이 그 창조주를 보고 얼굴을 붉혔도다(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라는 단 한 문장만을 제출하여 만점을 받았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와인은 그 맛과 향으로 예술가들을 매료시켰을 뿐만 아니라 마법처럼 그들의 언어적 감성까지 물들이는 존재였습니다.
3. 추억을 여는 열쇠
와인은 그리운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열쇠이기도 했습니다. 와인 애호가로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는 그의 여러 문학작품에서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줍니다. 그는 수필 ‘와인연구(Weinstudien)’에서 “와인은 내게 컬러가 아니라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유아 시절로 돌려보내는 와인도 있고, 학창 시절이나 여행, 사랑의 경험, 우정 등을 회상시키는 와인도 있다.”고 말하며 와인을 인생의 모든 즐거움에 대한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와인을 마시는 행위는 단지 맛을 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각, 후각, 공감각적 경험이며, 특정한 과거의 기억을 다시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즉 와인은 갖가지 추억을 여는 열쇠인 셈입니다.
4. 미술 작품으로 재탄생
와인은 미술 작품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고 명작으로 재탄생되기도 합니다. 다음의 몇몇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와인의 다양한 매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심금(Heartstrings)’은 커다란 와인 잔 위에 거대한 뭉게구름을 얹어 표현한 작품으로 대지의 생명은 결국 하늘과 만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바로 그 만남의 순간이 심금을 울리는 순간입니다. 작품의 제목처럼 이는 정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합니다. 스페인의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프랑스 5대 와인 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칠드’의 1973년 빈티지 와인의 라벨을 그렸습니다. 이는 피카소 생전의 마지막 와인 라벨로 와인 수집가와 미술 수집가 모두에게 최고의 컬렉션으로 통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피카소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마르크 샤갈, 바실리 칸딘스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과 같은 입체파, 초현실주의, 팝 아트 등 현대 회화의 거장들도 매년 무통의 라벨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한 마디로 무통 와인 컬렉션 자체가 현대 회화 걸작선인 셈입니다.
5. 기독교의 상징
기독교에서 와인은 종교적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세계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데, 와인은 이 최후의 만찬을 계기로 기독교와 불가분의 음료가 되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그의 열두 제자들과 나눠 먹은 음식이 바로 빵과 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인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인 예수의 피를 상징합니다. 또한 와인은 예수의 부활과도 관련이 있으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는 포도나무의 생장과 관련한 의미입니다. 포도나무는 포도 수확이 끝나고 가을이 되면 다 말라비틀어져 죽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죽었다고 생각했던 가지에서 다시 풍성한 잎과 열매를 맺습니다. 이는 마치 십자가에서 죽었던 예수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와인으로 재탄생하여 생명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와인의 양조 과정과 관련 있습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으로 뜯기고 발로 밟히고 짓이겨지는 수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런 힘든 과정이 예수의 수난과 닮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들로 포도나무와 포도가 예수의 삶과 비슷하다고 여겨져 와인이 예수의 피를 상징하게 되었고 기독교 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위치에 있습니다.
6.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된 와인
와인은 고대부터 다양한 질병에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의사들은 와인을 소화제, 구충제, 소변 조절제, 관장제로 처방했고, 이러한 와인이 포함된 조제법이 파피루스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나 소독제로도 처방했다고 전해집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와인과 약재를 섞어 최초로 약술을 만들었으며, “알맞은 시간에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마시면 인류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와인이 살균 및 이뇨 작용을 하고 병의 회복을 돕는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와인이 몸에 들어가면 피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산후조리, 노화 방지, 역병 예방에 와인을 치료 약으로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연구에 따르면 레드 와인에 함유된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은 실제로 강력한 항산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고, 심장 질환을 예방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의사들은 현대보다 더 먼저 와인의 효능을 알아보고 사용한 셈입니다.
결론
지금까지 와인의 다양한 역할과 범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와인은 단순히 음료라는 한정된 영역을 넘어 철학과 사상의 정신적 영역과 예술적, 종교적, 의학적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유명인들이 남긴 수많은 찬사가 이를 증명해 주는 듯합니다. 아마 인류가 존재하는 한 와인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습니다.